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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25 현각스님 인터뷰 중에서 by 분별없는 아이디어
인사동에 봄비가 내리고 있다. 길은 질퍽거리고….
이런 날 이국땅을 떠도는 스님으로서 어떤 기분이 드나. (나는 무심히 궁금해서 물었는데 그는 선적(禪的)기습을 받은 걸로 오해한 것인가.)

현각스님 : 옛날엔 그런 질문이 무서웠다. 왜 사느냐, 왜 먹느냐, 왜 죽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비 오는 날엔 특히 더했다. 참선 공부가 그런 공포로부터 벗어나 진리의 세계로 '나가는 곳(exit) ' 을 알게 해줬다. 예수님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고 말했다. 이제는 개안(開眼) 한 기분이다." (오해에서 비롯되었든 어쨌든 상대가 이렇게 나오니 내친걸음이다.)

기자 : 지금 창밖으로는 무슨 진리가 보이는가.

현각스님 : 마실 땐 마실 뿐, 들을 땐 들을 뿐, 볼 땐 볼 뿐 오직 '할 뿐 마음' 으로 진리를 찾는다. 진리는 바로 앞에 있다. 예수님도 가르쳤다. 어린 아이 같아야 하나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 미래, 과거를 생각 않는 어린 아이 같은 '할 뿐 마음' , 곧 오직 이 순간을 사는 존재의 마음이 바로 진리의 세계다. (창밖에) 아저씨들이 일(포장공사) 하는 소리 그 자체가 금강경보다 더 깊은 진리다. 비 오는 날답게 들을 뿐, 볼 뿐, 맡을 뿐이다. "

기자 : '배고프면 밥 먹고, 마려우면 변소 간다.' 는 평상심의 도는 무분별의 경지를 체득해야 할 수 있는 말인데 그런 경지를 느껴봤나.

현각스님 : (인터뷰 장소에 빗대어) 지금 그냥 차를 마시고 있다. '예' 하면 거짓말이요, '아니오.' 해도 거짓말이다. '예' 나 '아니요' 는 대답이 되지 않는다." (평상심의 실천만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공부의 정도를 논하는 것은 사실 수행자에게 결례다.)

기자 : '부처님 오셨다' 고 거리가 분주한데 부처는 왜 오는가.

현각스님 : 당신 때문에 왔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다시 오는 게 잘못됐다. 안 아프면 약이 필요 없지 않은가.

기자 : 아무도 안 아픈 그런 세상이 오겠는가.

현각스님 : 그래서 오직 공부할 뿐이다.

기자 :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는가.

현각스님 : 오직 공부할 뿐이다.

그는 오전 2시45분에 일어나 혼자 5백번 참배하고 3시40분에 대중스님들과 백팔배를 시작으로 6시까지 아침 예불과 참선을 한다.
낮에는 은사인 화계사 조실 숭산 스님의 책 편집, 경전 번역, 한국말 공부, 등산 등을 하며, 저녁 예불과 참선을 마치고 오후 9시30분 잠자리에 든다.

기자 : 안거(스님들이 여름. 겨울철 90일간 선방에 틀어박혀 화두를 붙잡고 정진하는 수업. 이 안거의 질과 양이 그 스님의 공부역량을 가늠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는 몇 차례를 했는가.

현각스님 : 모두 열두 번 했다. 그 중에는 미국의 선 센터인 홍법원에서 세 차례 한 것도 있다. 안거 중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묵언을 지켰다."

기자 : 붙들고 있는 화두는 무엇인가.

현각스님 : '내가 무엇인가' '이게 도대체 뭔가(이 뭐꼬) ' 이다.

기자 : 그래 스님 스스로는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고개를 숙이고 취재수첩에 열심히 끼적거리고 있는데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쳐다보니 파란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 그리곤 한마디 툭 던졌다.

현각스님 : 이 얼굴이 대답이다. (조금 후에 ) 그냥 앉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로마병사가 예수님에게 '너 누구냐' 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병사를 쳐다봤다. 말로 하면 그 존재를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기자 : 유학승이 뭔가 깨친 것처럼 자꾸 말하니까 선적(禪的) 즐거움이 그럴 듯하다.

현각스님 : 앉고, 차를 마시고, 얘기하고 있다. (다시 조금 후에) 말 없는 그 가르침이 얼마나 기쁜지 아직도 사람들은 모른다. 말 없는 대답이 폭발적인 설명이다.

기자 : 예수를 자주 거론하는데,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연구한 걸로 알고 있다. 기독교와 불교를 새롭게 만나게 하는 역할도 할 수 있겠다.

현각스님 : 종교에는 우리 편, 다른 편이 원래 없다. 나는 예수님의 뜻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을 불교에서 찾았다. 기독교는 교파가 수많이 갈리면서 정치적인 종교가 돼 예수님의 깊은 뜻을 잃게 됐다.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길을 보여주지 않고 '오직 믿어라' 하는 감정적인 가르침만 줘 만족을 못했다. 그러다 각자가 체험 수행에 모든 것을 거는 선불교를 알게 돼 눈이 다시 떠졌다.

기자 : 그 체험이라는 게 엄청난 고행을 수반한다. 나중에 부처와 내가 따로 없는 경지, 곧 부처를 만나면 부처도 죽일 수 있는 힘을 얻을 자신이 있는가.

현각스님 : 앉고, 차를 마시고, 대화하고 있을 뿐이다.

기자 : 세상은 고해인가 불국토인가.

현각스님 : 지금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기자 : 고해 아닌가.

현각스님 : 집착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다. 기독교의 원죄 의식이 불교에는 없다. 본 성체는 순수하다. 생각에 집착하니까 고해다.

기자 : 스님들이야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 버리면 그뿐이지만 속인들이야 그리 쉽게 생각을 놓을 수 있는가. 스님들을 보면 속인들의 약을 올리는 것 같다.

현각스님 : 올바른 공부를 하면 집착을 놓을 수 있다. 올바른 정치를 하면 나라를 제도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를 지옥에 보내게 된다.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아야 한다. 그러면 속인과 스님이 따로 없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는 마음이 공부다. 그런데 지름길로 가고 싶으면 머리를 깎아야 한다. 예수님도 '진리를 알고 싶으면 여러 가지를 놓아버리고 나를 따르라' 고 가르쳤다.

그는 공부를 북한산 등산 코스로 비유했다. 어느 길로 오르든 맨 꼭대기는 같고 거기서 보이는 사방의 전망도 같다고 했다. 북한산 꼭대기론은 그가 생각한 것과 같은 의미로 내가 가끔 써먹는 레퍼토리 중 하나다. 묘한 인연이라고 했더니 그는 "우리 마음이 같은 모양" 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러나 말로만 그러면 도움이 안 된다" 고 덧붙였다. 뜨끔하다.

기자 : 선불교는 중국에서 나왔으나 한국에서 공부가 가장 활발하다.
그런 한국스님들이 지난 번 조계종 사태 때 액션 스펙터클을 보여줬는데 감상이 어땠는가.

현각스님 : 한국사회는 갑자기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종교계의 싸움도 국회에서의 싸움이나 경제계의 다툼처럼 사회적 변화에 따라 일시적으로 금이 간 것이라고 본다.

기자 : 크게 실망하지 않았나 싶어서 물었다.

현각스님 : 좋게 바뀌고 있지 않나. 물론 안 싸우면 좋겠다. 남에 대해 뭐라고 할 수는 없고 나는 구름처럼, 물처럼 운수납자의 길을 걸어 갈 것이다.

기자 : 한국스님들 중엔 공부를 잘 안하는 스님들도 있다. 겪어보니 어떻던가.

현각스님 :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스님사회에도 공부를 하는 스님과 안하는 스님의 스펙트럼이 있다. 그런데 도시(서울 수유리 화계사) 에 있을 땐 잘 몰랐는데 산에 가서 보고 깜짝 놀랐다. 묵언,불식,장좌불와 하는 분들이 많았다."

기자 : 공부를 안 하는 스님에게 한마디 해주겠나.

현각스님 : 스님,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는 한국 스님사회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자신의 입장을 고려했겠지만 사실 스님들 공부는 제 혼자 하는 것이다. 쌀만 축낸다는 손가락질을 받든, 해탈을 하든 말든 모든 게 제 행위의 결과일 뿐이다.

기자 : 학교 공부를 많이 했던데 선수행과 병행해 불교학 쪽에도 관심을 기울이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서양에 포교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고.

현각스님 : 나는 선에 전념하겠다.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는 학자들이 죽도록 연구만 하는데 대부분 '죽은 말' 이다. 사구활구(死句活句) 로 표현하면 테레사 수녀가 활구다. 물론 학문연구는 대단히 중요하다. 포교는 지금의 나의 문제는 아니다.

기자 : 화두 말고 마음에 새겨둔 경구 같은 건 있나.

현각스님 : '오직 모를 뿐' 이라는 말이다. 이 말이 어떤 존재든 가장 깊이 있게 이해하는 길로 생각된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고 하도 그러니까 제자가 '선생님은 자신을 아느냐' 고 되물었다. 소크라테스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모른다는 걸 잘 안다' 고 말했다. 농부들 웃음을 서울대나 하버드대 교수들은 모른다. 모르는 마음 자체가 '참 나' 다.

기자 : 타고난 백운(白雲:이판승을 백운, 사판승을 청산 靑山)이라고 한다)이다. 나중에 어느 산사의 주지 자리를 맡기면 어쩔 텐가.

현각스님 : 그런 걸 맡기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도망갈 것이다.

기자 : 70, 80세쯤에 고승이 됐다고 치고, 그 때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은가.

현각스님 : 그 때가 되면 와서 물어봐라.

기자 : 날이 더우면 소매를 슬쩍 걷듯 파적의 평심이 필요하다. 취미는 뭔가.
노래방엔 가봤나.

현각스님 : 오로지 보살행, 오직 공부할 뿐이다. 소변보면서도 공부한다. "

독자들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쓰는데 그는 이 말을 정색하고 하지 않고 웃으면서 했다. 수행하는 자의 진정성을 나타내기 위해 반농(半弄) 을 한 것이다.

기자 : 너무 그러지 말고. 스님도 인간이고 아직 젊은 축인데. 노래도 안 듣나.

현각스님 : 화계사에 있을 때 베토벤이나 구스타브 말러를 좋아해 그들의 곡을 크게 틀어 놓고 들었다. 로큰롤도 들었다. 바깥에서 스님들이 큰 소리로 '미국스님, 왜 그러십니까.' 그러면 '그냥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고 같이 소리치기도 했다.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 "

기자 : 아무쪼록 큰스님이 되길 바란다.
스님을 이렇게 신문에 불러내는 것도 공부에 방해가 되는 줄 안다. 화끈하게 한 5년쯤 묵언도 하고 그 이상의 공부도 해 어느 날 선시가 펑펑 터져 나오기를 바라겠다.

현각스님 : 그렇게 깊이 있게 가겠다. 이미(서울 화계사에서 계룡산 무상사로) 도시에서는 도망쳤다. 이 순간의 할 일을 잘 하다보면 언젠가 나는 사라질 것이다."

그는 기자에게 '김치찌개는 입에 맞더냐' '미국의 가족들이 보고 싶지 않나' 하는 낮은 질문을 하지 않아 'deep level' 에서 얘기가 돼 고맙다고 했다.

그러나 기사를 정리하고 읽어 보니 그는 아직 공부 중인 스님이고 기자는 공부가 안된 사람이라 '깊은 수준' 의 근처에도 못 갔다. 오직 미안할 뿐이다.

[중앙일보 2000-05-14 인터뷰]

Posted by 분별없는 아이디어